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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소개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의 노회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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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전남 노회
노회장 이종문|목사
주소 광주광역시 동구 남문로 629 전남노회 1층
TEL (062)232-0022
FAX (062)232-0024
URL http://전남노회.aub.kr
우리 나라에 미국인 선교사 언더우드(H.G. Underwood)와 아펜셀러(H.G. Appenzeller) 및 의사 스크랜톤(W.B. Scranton)가 1885년 4월 들어온 이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한국에 활발하게 전해졌다. 선교사들의 활동이 계속되는 중 각 교파와 선교회의 마찰을 피하고 선교활동의 중첩을 피하기 위해 예양협정(禮讓協定)을 맺어 미국 남장로회가 호남지방을 담당하게 되었다.

1891년 북장로교 소속 언더우드 선교사의 선교보고에 영향을 받아 최의덕(L.B. Tate) 이눌서(W.D. Reynolds), 전위렴(W.M. Junckin)과 그의 부인들 3인, 데이비스 양이 호남선교를 담당하였다. 1893년 전주에 첫 선교의 깃발이 세워지고 1893년 나주에 선교부를 설치하기로 했으나 실패하고, 1898년 목포 양동교회, 99년 나주군 광주군 영광군에 교회가 세워지기 시작하였다.

1900년대 초기 암울해지기 시작한 일본의 지배 아래서도 1903년 나주광암교회, 1904년 광주 양림리 교회, 옥과교회에 세워지면서 광주 선교부가 정착하게 되었다. 1905년 나주에 기도처도 세워지는 등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이 시기는 주로 의료와 교육을 통한 선교가 이루어졌다.

1907년 '조선예수교 장로회 독노회'가 조직되고 1911년에는 전라노회가 결성하였다. 이어 1917년 9월 17일 유서백 목사를 임시의장으로 하여 목포 양동교회에서 목사 10인, 장로 13인이 참석하여 전남노회를 처음 조직하게 되었다. 당시 전남노회는 제주도를 포함하여 60여 곳의 교회가 세워지는 큰 발전이 계속되었다.1922년에는 순천노회가 1930년에는 제주노회가 분립하여 독립하였으며, 전국에서 처음으로 평양노회와 함께 재단법인을 설치하게 되었다.

일제하에서 전남노회의 교회들은 신사참배 거부 등 일제에 저항하여 만세운동에 참여하고, YMCA, YWCA, 청년선교, 학원선교, 의료선교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계속된 일제의 강압으로 부끄러운 신사참배를 결의하기도 하고, 선교사들의 반대와 노회 탈퇴, 선교비 지원 중단으로 시련을 맞기도 하였다.

1945년 해방을 맞아 그동안 힘을 잃었던 교회들은 11월 광주 금정교회에서 35회 노회를 모이고 재건을 결의하였다. 46년 5월에는 노회를 광주, 함라, 목포, 장강지방으로 나누었다. 37회 노회부터는 목포 노회가 분립되었기에 광주, 나주, 영광 등의 3지역으로 나누었다. 6.25 한국전쟁 중인 43회 노회에서 광주시찰에서 광산시찰을 분리하여 4지역으로 활동하여 큰 성장이 있었다. 전쟁으로 인해 교회가 불타고 160여 인이 순교하였다.

교회는 교파로 분열되어, 고려파, 기독교 장로회, 합동 등으로 나눠지는 아픔을 겪게 되었다. 분열 이후에 흐트러진 시찰회를 광주, 장광, 나영, 담화 시찰로 조직하여 발전해 나갔다. 이렇게 60년대는 분열된 교회의 상처를 치료하고, 조직이 재정비 되어갔다. 70년대는 비약적인 발전이 거듭되었다.

1987년 4월 7일 서림교회에서 모인 제 98회 노회에서 광주노회와 분립이 결의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2001년 4월 112회 노회 현재에 148교회, 개척 25교회, 합 173개 교회, 목사 183 인, 전도사 129 인, 장로 375 인, 안수집사 789 인, 권사 1282 인, 서리집사 12476 인, 세례교인 약 31128 인, 교인수 59743인, 1만3천6백 85세대로 성장하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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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8회기 총회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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