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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왜 이 자리에 있을까요? 저는 왜 이런 글을 쓰고 있을까요? 저는 위로하는 자가 되고 싶었는데 그래서 신학을 한 건데 왜 제가 이 자리에 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디겠습니다. 그런데 제 아이가 참혹한 죽음을 맞은 이유를 저는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습니다. 오늘도 저는 하나님과 씨름중입니다. 자식을 잃고 자신의 출생을 저주하던 욥의 마음이 이랬을까요? 설명이 없는 죽음, 마지막 인사를 빼앗긴 죽음은 가족들에게는 지독한 고통입니다.
2014년 4월 고난주간에 환하게 웃으며 떠났던 아이들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것은 부활주일 전후였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지만 우리 아이들은 결국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부활주일에 기적이라도 일어나기를 소망했습니까. 하나님의 긴 침묵이 계속 이어지는 동안 속이 타들어가고 원망스러운 마음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큰 교회 목사님들과 일부 교인들의 막말이 비수가 되어 꽂힐 때마다 욥의 친구들이 생각났습니다. 위로보다는 설명을 하기에 바쁜 이들에게서는 예수님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호통을 들었던 욥의 친구들, 강도 만난 이웃을 피해 성전으로 가버린 레위인과 제사장의 모습만 보일 뿐이었습니다.
다행히 예수님의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다가와 손을 잡아주시는 교회와 교인들이 있었습니다. 저희가 여전히 길 위에 남아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들어주고 함께 울고 함께 외치고 함께 싸워주었습니다. 조속히 인양하고 미수습자를 가족 품에 보내달라는 가장 상식적인 요구를, 그 큰 참사의 원인을 밝혀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하자는 당연한 요구를, 정부가 시간을 끌고 막고 훼방할 때마다 가족들은 끝도 없이 높은 벽 앞에 서있는 기분이었습니다. 과연 이벽은 넘을 수가 있을까? 이전의 참사 피해자들이 그러했듯이 우리도 포기해야하는 건가? 진실도 모르고 정부와 언론의 장단에 맞추어 피해자를 종북 좌파로 몰아가는 무지한 자들 때문에 받는 상처는 언제쯤 멈출까? 이런 질문 속에 위축된 가족들을 안아주고 품어준 이 땅의 작은 예수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너희는 내가 시련을 겪는 동안에 나와 함께한 사람이다. (눅22:28)'
2000년 전 예수님을 따르던 자들도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의 처참한 죽음을 목격하면서, 게다가 그분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을 지켜보면서 얼마나 많은 좌절과 부끄러움을 느꼈을까 생각합니다. 세월호가 침몰되는 것을 생중계로 지켜본 가족들과 국민들의 마음이 이와 비슷했을 겁니다. 이제 참사 3주기를 맞아 세월호와 관련된 모든 것을 덮으려고 했던 정권이 무너지고 세월호가 인양되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 돌아온 것은 아니지만 3년의 기다림 끝에 남은 9명을 찾을 수 있게 되어서, 제대로 된 조사를 시작할 수 있게 되어서, 작은 희망을 봅니다.
그래서인지 올해 3주기가 되는 4월 16일이 부활주일인 것도 하나님의 사인처럼 보입니다. 욥의 친구들이 자신들의 생각만을 가지고 욥을 괴롭히는 것을 보다가 결국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것처럼 오랜 침묵 끝에 아주 작은 응답이 온 것 같습니다. 어쩌면 2014년 4월16일의 고난주간이 저희 가족들에게는 지금까지 이어져온 것 같습니다. 부활주일에 찾아온 3주기가 이 고난을 끝낼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세월호가 모습을 드러냈다고 모든 게 끝이 아니라고 이제 시작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미수습자를 모두 찾아내고 제 2 특조위를 만들어 제대로 된 진상조사가 이뤄지면 그때 비로소 부활의 아침은 저희 가족에게 올 것 같습니다. 많은 기독인들이 저희 가족과 함께 세월호에도 부활의 아침이 오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단원고 3반 유예은 엄마 박은희 전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