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한국(지방)교회들’의 “예장총회 77차
결의에 대한 재심청구” 연구보고서
1. 연구 경위 및 질의 개요
1) 제76차 총회(1991)에서 경북노회가 제출한 “지방교회(회복교회)의 정체에 대한 질의”에 대하여 동 교회의 신론, 기독론, 인간론, 교회론에 대하여 연구한 후, “윗트니스 리 사상은 윗치만 니 사상과 함께 한국교회의 많은 이단들을 낳게 하는(김기동, 권신찬, 이명범 등) 모태가 되는 명백한 이단이다”라는 결론을 내리다. 이어 제 77차 총회에 “추가 연구보고서”가 제출되어 채택되다.
2) ‘한국(지방)교회들’ 대표 3인 및 한국복음서원 대표 명의의 “대한예수교장로회 제77회 총회에서 결의한 한국(지방)교회들과 한국복음서원의(윗치만 니와 윗트니스 리) 문서에 대한 이단선언 철회 및 해지 요청서"(2006.3.24)가 이첩 되었으나, 제출된 자료에는 본 총회의 결정사항 전체에 대한 공식적인 변화된 입장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아 “귀 단체에서 재출한 제반 자료에는 본회가 필요로 하는 재심신청 요건이 미비하여 부득불 재심 착수가 불가함”을 통보(2006.9.4) 하다.
3) ‘한국(지방)교회들’ 공동대표 2인 명의의 “예장총회 77차 결의에 대한 재심청구 요청서”(2007.3.27)가 추가 자료와 함께 다시 이첩되어 연구에 착수하다.
2. 연구 보고
1) 신론 및 신화(神化)의 교리의 문제점
77차 총회의 결의는 윗트니스 리가 신인합일주의를 가르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윗트니스 리는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한 목적이 하나님 자신을 사람 속에 넣어서 사람과 연합하여 하나님과 같게 되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으며 “하나님 자신을 대량으로 생산할 것을 계획”으로 “자신을 제품으로 생산”하는 것이며,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으로 사람이 하나님과 똑같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전능하사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 사이에 뛰어 넘을 수 없고 엄격한 차이를 인정해야하는 우리의 신앙과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재심신청사유서는 “‘우리는 하나님이 된다’는 말의 의미를 우리가 거듭남을 통해 하나님에게서 난 이후 전적으로 거룩하게 되며, 변화되고, 하나님의 맏아들이신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을 때까지 하나님으로 적셔지고 침투됨을 가르킨다. 이러한 하나님이 되는 성화 과정에서 우리의 인성이 제해지거나 피조물로서 우리의 신분이 바꿔지지 않는다. 우리는 영원토록 피조물과 인간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인간의) ‘신화(神化)’는 우리가 신격(Godhead)의 일부가 될 만큼 높여지거나 하나님의 비공유적 속성을 나누어 가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가 충분하게 신화된 이후에도 우리는 무로부터 무엇을 창조할 수 없을 것이며 무소부재하거나 전능하게 되지 않을 것이다”(「확증과 비평」, 2002년 10월호 ‘신화(Deification)’ 특집)고 해명하였다.
내용적으로 공감되는 바 없지 않지만 여전히 ‘인간이 하나님이 된다는 신화(Deification)의 교리’를 포기한 것으로 볼 수 없다. 특히 한국교회의 여러 이단집단들이 동양의 도교와 같은 재래종교의 영향으로 인간이 신성(神聖)에 참여하는 길을 가르치고 이 땅에서 죽지 않고 영생한다는 교리를 퍼트리고 있으므로 ‘인간이 하나님이 된다는 신화(Deification)의 교리’는 지방교회가 주장하는 내용과 달리 용어 그 자체가 많은 신앙적인 왜곡과 오해의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우리 총회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의롭게 되고, 양자가 되고, 거룩하게 되는 성화(聖化)를 고백한다('헌법', 41쪽, 「요리문답」 문 33-35). 칭의와 양자됨과 성화는 ‘우리가 하나님이 된다는 신화(神化)의 교리’와 명확히 구분되므로 그 내용과 상관없이 그러한 표현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신화(神化)의 교리를 변론하기 위해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것은 사람이 하나님이 되게 하기 위함이다”는 이레네우스(?)의 언급을 인용한다. 그러나 이 경우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신성을 지닌 하나님이 인성을 지닌 인간이 되신 것은 인성을 지닌 그리스도께서 신성을 지닌 하나님이 되기 위한 것”이라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2) 양태론적 삼위일체론의 문제점
윗트니스 리는 “하나님의 세 인격은 세 영들이 아닌 하나의 영”으로 세 인격이 한 영 안에 있는 ‘삼일(三一)하나님’”이 되신 것이며, “하나님은 성육신의 과정을 거치는 단계를 통해 세 인격이 하나로 발전된 것”이라 주장하여, 초대교회에서 이미 정죄된 “양태론적 삼위일체관을 변형된 형태로 표현”한 것으로 지적되었다.
이에 대해 재심신청사유서는 “이 세 구절(엡 4:6, 고후 13:5, 롬 8:11)은 아버지와 아들과 그 영이 우리 안에 계심을 계시하여 준다. 그러면 몇 가지 인격이 우리 안에 있는가? 셋인가 하나인가? 우리는 서로 다른 세 인격이 우리 안에 있다고 말 할 수 없고 오직 한 인격만이 우리 안에 있다고 말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여전히 “서로 다른 세 인격이 아니라 한 인격만이 우리 안에 있다”는 표현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세 분이며 동시에 한 분이라는 정통적인 삼위일체론의 신비를 왜곡시킨다. ‘세 분으로 계시는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있다고 표현하여야 교리적 왜곡과 오해를 피할 수 있다.
우리 총회의 「신조」에는 “하나님은 본체에 삼위가 계시니, 성부, 성자, 성령이시다. 이 삼위는 한 하나님이시다. 본체는 하나요 권능과 영광이 동등하시다”('헌법', 26쪽)라고 고백한다. 하나님의 일위성만 강조하면 일신론이나 양태론적 이단에 빠지고, 하나님의 삼위성만을 강조하면 삼신론이나 종속론적 이단에 빠진다. 따라서 삼위일체의 제 2위격으로서 성육신 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신이며 동시에 참인간이듯이, 하나님은 세 분이며 동시에 한 분이라는 양성론 및 삼위일체론의 신앙의 신비를 견지하여야 한다. 용어 상으로도 삼위일체론의 쟁점은 한 본체와 세 인격(위격)에 관한 것이지, ‘세 인격과 한 영’이나 ‘세 인격과 세 영’에 관한 것이 아니었음을 밝혀둔다.
윗트니스 리가 “‘온전한 수박’은 성부 하나님, 쪼개진 수박은 성자 하나님, 우리 안에 들어온 수박은 성령님이라고 봄으로써 우리가 수박을 먹는 순간 ‘온전한 수박’과 ‘쪼개진 수박’인 성부와 성자 하나님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시고 오직 성령님만이 남으니 양태론”이라고 지적한 것에 대해 ‘진리상의 문제가 없더라도 ’수박 비유’ 등 오해될 수 있는 ‘비유’와 ‘표현’은 가급적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점은 인정되며 이에 대해 양해를 구한다”고 한 것은 전향적인 자세로 평가한다.
3) 기독론의 문제점
윗트니스 리는 예수님의 인성에 변화가 있었다고 하였다. “그의(예수) 인성이 아들의 명분으로 태어나기 위하여 부활이 필요했다. 부활 이전에 그리스도는 그의 신성에 따르면 하나님의 아들이었으나 그의 인성에 따르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다”는 주장은 “예수님은 나실 때부터 승천하시기까지 참 하나님이시요 참 인간이신 그리스도의 양성교리에 어긋나는 것”으로 지적하였다.
이에 대해 재심신청사유서는 “예수님의 인성이 부활을 시점으로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않을 것으로 다시 사는(고전 15:42) ‘변화’를 거치셨다”는 말을 하고자 했으므로 별 문제가 없으며, 윗트니스 리는 “예수님은 부활 후에도 여전히 참 하나님이며, 참 사람이시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부활을 시점으로 예수님의 인성에 ‘변화’가 왔다고 하는 설명은 예수 그리스도 성육신 전후나 부활 전후에도 예수의 양성은 ‘변화됨이 없으시다’는 니케야 신조와는 다른 주장임을 밝혀둔다.
4) 인간론의 문제점
윗트니스 리는 영, 혼, 육 삼분설을 취하면서 인간의 타락은 육적인 것으로만 이해하고 영은 타락하지 않은 것이 되어 전인적인 타락을 부정한 것이나, 생명나무가 하나님이요 선악과는 사탄이라는 등 주장은 성경적으로 지지될 수 없는 허황된 사변과 논리라고 지적되었다.
이에 대해 재심신청사유서는 윗트니스 리가 인간의 영적 타락과 전인적인 타락을 부정하지 않았다는 여러 증거를 제시하였다. 그러나 “생명나무가 하나님이요 선악과는 사탄”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아무런 해명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