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보그(E. Swedenborg)의 사상에 심취하여 기독교신앙의 신령주의적 체험을 중시하여 1933년 6월 신비주의계 부흥사였던 이용도 이호빈 목사 등과 함께 '조선예수교회'라는 새로운 교단을 창설하였다.
백남주는 1929년부터 이미 원산에서 접신극(接神劇)으로 친림주(親臨主)를 자처하고 있었던 유명화(劉明花)라는 여인과의 친밀한 관계였다. 유명화는 예수가 자신에게 친림 내재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모든 '말'이 곧 예수의 말씀이라고 방언(放言)하였다. 또 백남주는 1935년 여름 평북 철산에서 '새주(主)'를 자칭하는 여 권사 김성도(金成道)와 손 잡고 '새주교회'를 설립하였고, 김성도의 아들 정모(鄭某)를 그 새교회의 복음사(福音使)로 임명하는 등 그릇된 행위를 자행하였다.
백남주의 신앙은 신비주의적 체험과 신령주의적 친림체험이 특징적이었지만 심오한 신학의 기초가 결여되었기 때문에 쉽게 이설(異說)에 흘렀고, 따라서 전통적 교리의 신앙을 냉소하는 오류를 범하였다. 그의 신앙은 한국교회 신앙 유형 분류상 최초의 신령주의 실험자로서 이용도와 함께 신비주의로 대변되는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