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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 개관

Peter Song 2023-04-03 (월) 20:00 1년전 909  

우크라이나 개관

 

2021224, 러시아군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발발하여 어느덧 1년이 지났으나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러시아군의 공격과 포격으로 많은 도시들이 파괴되었고, 숱한 피란민들로 인구 변동이 발생하였기에, 전재 이전과 전쟁 이후의 상황에 많은 변동이 생겼으나, 본 기록은 전쟁 이전의 우크라이나 여러 상황/통계들을 기록, 훗날 전쟁 이후의 우크라이나 상황/통계과 비교 자료로 삼고자 한다.

 

국명: 우크라이나, UKRAINE  (한국의 6배 면적)

면적:  603,700(한국의 6배 면적)

위치:  동경 32, 북위49

          지리적으로 유럽, 동유럽에 위치하며, 주변국으로, 육로로 러시아 벨라루스 폴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 몰도바 등 7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고, 남부의 바다/흑해로는 러시아 불가리아 터키/튀르키예 조지아 등 4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시간대: UTC + 2 (키예프를 중심하는 전국이 단일 시간대이며, 서울보다 -7시간 늦다.)

언어: 공용어(학교와 관공서)로는 우크라이나어를, 상용어로 러시아어를 사용한다.

인구: 4200,

         우크라이나인 77.8%, 러시아인 17.3%,

종교:  정교회 75%, 가톨릭15%(그리스, 로마), 개신교 5%(침례교, 오순절교 등) 기타

독립:  1991824

정부:  4년 중임 대통령 중심제

GDP:  2021년의 1인당 GDP는  4,835.57 USD

 

 

약사(이우루시/Киевская Русь 연대표)

 

882년, 키이우루시 대공국 탄생, 노브고로드-키이우 고대 루시의 통일.

907년, 알렉(Олег), 비잔틴 원정 시작.

942년, 이고르(Игор)대공, 비잔틴 원정 실패, 944년 강화 체결.

957년, 올가(Ольга)여공, 비잔틴을 방문하여 희랍 정교를 수용, 개별적 수용으로 그침.

972년, 스뱌또슬라프(Святослав), 영토확장을 꾀하다 유목민족에게 피살됨.

987년, 블라지미르(본명: Володимеръ), 키예프루시 대공에 즉위.

988년, 블라지미르, 키이우루시 공국이 정식으로 희랍 정교를 수용/국교로 선포함.

1015년, 야로슬라프(Ярослав), <러시아법전>이 편찬되고, 소피아 사원을 건립(1057년-).

1017년, 성'안토니'(Anthoney)에 의해 라브라 대수도원(일명, 동굴수도원) 시작.

1155년, 유리 돌고루키(Юрий Долгорукий), 키예프 대공 즉위, 모스크바 클레믈린 성벽 축성.

1212년, 유리 프세볼로도비치 대공 즉위.

1237년, 몽골의 키이우루시 침략으로 모스크바, 블라지미르가 황폐화 됨.

1238년, 야로슬라프, 야로슬라프 프세볼로도비치 2세의 즉위.

1240년, 몽골 바투의 대군에 의해 키예프가 점령당함.

1380년, 모스크바 공국군이 킵차크 한국의 마마이 대군을 격파.

1450년, 키예프가 몽골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해방됨.

 

몽골에 의한 침공과 210년간의 식민통치로 약화된 키이우 루시, 즉 우크라이나에서는 이후 수세기 동안 러시아, 오스트리아, 폴란드 등 수많은 국가가 우크라이나의 드넓고 비옥한 땅을 탐냈다. 18세기말 폴란드가 분할되고 튀르키족이 흑해 북안에서 물러난 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때까지 120여년간 우크라이나 영토의 80%는 러시아제국, 20%는 오스트리아 제국에 의해 지배된다.

1차세계대전이  터졌을 때 우크라이나만큼 주변의 여러 나라들에 치여 유린당한 땅도 없었다. 볼셰비키 적군, 폴란드군, 루마니아군, 프랑스군이 우크라이나 땅을 둘러싼 세력들이었다.  1919년과 1920년의 우크라이나는 여러 세력의 충돌로 무질서한 내란 상태에 빠져있었다.

 

1차대전으로 러시아에서는 제정이 무너지고 소련이 탄생하였다.

 1922년 소비에트 연방에 정식 가입한 우크라이나는 70여년간 구 소련에서 제 2인자로서의 위상을 차지하다가 구소련의 해체를 틈타 1991824일 독립하였다.

 

독립당시 우크라이나는 핵미사일 176, 핵탄두는 1800기로서, 그 자체로 미국과 러시아를 잇는 세계  제 3의 핵강국이었다. 그런데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등의 수반이 우크라이나를 압박하여, 모든 핵무기를 폐기하도록 하는 부다페스트 협정(어떠한 경유에서건 우크라이나 영토를 지켜주겠다. 경제지원도 하겠다)199412월에 체결하였고, 이 협정에 따라 우크라이나는 자국의  모든 핵무기를  폐기하였고 130만의 군대도 10만이하로 감축하였다.

 

2014년  2월 러시아 세력에 의한 크림반도 병합이 시작되어  3월에 전격  합병이 단행되었다.

그리고 러시아군에서 제대한 이들을 용병으로 고용/파견한 러시아 사주에 의하여 돈바스(우크라이나 동부의 루한스크주와 도네츠크주를 통칭하는 말) 내전이 시작되었고,

2021224일 러시아군의 전격  침공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었다.

 

우크라이나에 가장 먼저 입국한 한인 선교사는 윤상수선교사로(예장 합동측) 19922월에 크림반도의 얄타에서 사역을 시작하였다.

예장 통합측 선교사로는 2002년에 임현영선교사가 키이우에 입국하여 사역하다가, 2015년에 정년은퇴하였다.

2023년 현재 통합측 선교사로는 임광택 홍재현, 송은용 홍윤주, 박종인 변정애, 홍남기 김인규, 김대오 박미아, 최상호 김은주 선교사 가정의 6가정의 12명이 사역하고 있다.

  

재우우크라이나한인선교사협의회에 소속한 선교사는 전쟁이전에  70여가정이다.

필자가 입국한 20048월 엔 앞서 온  선교사가  18가정이었는데, 나의 입국이후 입국한 선교사들은  막바로 우크라이나로 사역하러 온초임  선교사가 아닌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에서  다년간 선교/사역하다가 추방되어 이동해 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달리말해 우크라이나 정부에서는 타국에서 추방되어 이주해온 선교사들에게 종교비자를 내주어 자유롭게 선교활동을 하도록 허용하고 있으며, 본 필자가 사역하는 동안 선교사역 문제로 추방당한 선교사는 전혀 보지도 듣지도 못하였다.

 

우크라이나는 소비에트 시절부터 다른 공화국들에 식량과 농작물을 공급하는 농작물 생산기지를 담당하여 빵바구니 불리워왔다. 12개국으로 구성된 소비에트의 수요의 25%를 담당하면서 그 나머지는 유럽 마켓에 수출하였다.

1986426일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우크라이나 농작물은 방사능에 오염되었다는 루머로 수출길이 막혀, 우크라이나 농업은 쇠락하기 시작하였다.

 

우크라이나 면적은  603,700, 유럽에서는 러시아 다음의 두번째로 넓은 나라로 그 넓은 면적에 산이 거이 없는 경작이 가능한 들판과 구릉지로 이루어져 있다.  우크라이나 토양은 농작물 경작에 최적의 흑토/부식토(체르노젬)로 다소 과장한다면 마른 지팡이를 꼽아도 그 지팡이에서 뿌리가 나고 싹이 나서 자라 결실을 맺을 정도로 기름진 옥토이다.

우크라이나 농산물로는 보리 옥수수 해바라기 감자 등으로 퀄러티는 가치 최상급으로 세계의 많은 나라에 수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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