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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소개 총회역사 설립배경

설립배경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의 설립배경을 안내해드립니다.

제7장 총회의 교회개척운동과 재정자립

01
교회연합을 위한
노력

1) 세계교회협의회(WCC) 탈퇴(1960)

1960년 2월 17~20일까지 서울 새문안교회에서 개최된 제44회 총회에는 30개 노회(참관한 함북노회 및 불참한 충남노회, 황남노회, 목포노회 제외)에서 목사 106명, 장로 118명, 선교사 21명이 모여 명칭을 ‘대한예수교장로회 제44회(통합)총회’로 그리고 합동과의 연합을 위해 “한국 교회는 세계기독교협의회(WCC)에 대한 심각한 의견 차이 때문에 교회의 화평을 위하여 이를 탈퇴한다.”는 내용을 포함하는 총 8개조로 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안’을 결의했다.

 

2) 세계교회협의회 재가입(1969)

1960년 9월 22~26일까지 서울 영락교회에서 제45회 총회가 개최됐다. 개회 첫날 승동 측에 따로 모이는형제들과 다시 한 번 화합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하여” 총회 개회를 연기하고 합동 총회에 보낼 특별위원 7인을 선정했다. 하지만 총회 둘째 날인 23일 오전 특별위원 대표는 승동 측이 이미 개회하여 임원을 선정하는 등 회무를 진행했고 또한 타협의 회합을 절대 거절함으로 더 이상 총회 개회를 지연하기 어렵다고 보고했다. 1962년 9월 20~25일까지 서울 영락교회에서 열린 제47회 총회에서 합동추진위원회는 합동정책 중에 “WCC 탈퇴는 재확인한다.”고 했지만 남대문교회와 승동교회에서 두 번에 걸쳐 합동 측 대표들과 만나 연합을 위한 회담에도 불구하고,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결별했다. 양측은 대구제일교회에서 세 번째 만남을 가졌으나 합의를 보지 못하고, 결국 합동 측과의 연합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1969년 9월 25~29일까지 서울 영락교회에서 개최된 제54회 총회에서 WCC 재가입을 결의했다. 이후 합동 측과 공식적인 교류는 중단됐다가 1995년 1월 5일 총회는 처음으로 신년하례회를 개최했는데, 합동 측 총회장이 참석해 축사를 했고, 합동 측 신년하례회에는 본 교단 총회장이 참석해 축사를 하므로 재개됐다.

 

3) 장로교회의 연합운동

1962년 제47차 총회의 ‘합동원칙’과 ‘합동정책’에 나타난 본 교단의 연합정신은 한국교회 연합운동에 주도적 참여로 구체화됐다. 연합정신은 본 교단의 중요한 기반이다. 선교 초기로부터 연합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으며, 합동 측과의 분열 이후에도 재연합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한편,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연합활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오고 있다.
02
사회선교

1) 한국교회선언문(1972)

1972년 9월 21~25일까지 서울 동신교회에서 개최된 제57회 총회에서 임원회가 제안한 ‘한국교회선언’을 기립 표결한 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사회적 공감대가 이루어진 문제들에 대한 본 교단의 대사회 선언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1987년 4월 13일 제5공화국의 호헌조치에 대해 반대하는 목회서신을 발표하고, 6월 7일 주일에는 전국 교회들이 ‘나라를 위한 기도회’를 개최했으며, 총회 인권위원회 주최로 6월 22일 새문안교회에서 ‘나라를 위한 기도회’를 개최하는 등 예언자적 역사의식을 보여 주었다.

 

2) 도시산업선교

한국 사회의 급격한 산업화와 이로 인한 부작용이 사회적인 문제로 등장하면서, 총회는 복음전도와 영적 회복을 목적으로 한 산업전도사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했다.

 

3) 농어촌선교

1959년 속개된 제44회 총회에서 농촌부는 “문화적, 경제적 혜택을 입지 못하고 피폐일로에 기울어져 가는 농촌에 처하여 있는 농촌교회와 특히 과거 전도부가 5개년 간에 개척한 교회를 신앙적, 경제적, 실질적으로 지도 육성하여 신앙적 부흥과 경제적 자립” 사업을 요청했다. 1965년 9월 23~29일까지 새문안교회에서 열린 제50회 총회는 대표적 농민운동가인 배민수 목사 외 5명을 농촌사업지도위원으로, 그리고 사회부가 보고한 “각 노회에서 농촌위원을 강화하여 지도자 양성 및 농촌 교회사업을 보다 더 계획적으로 시행”하려는 사업계획을 허락했다. 1970년 9월 24~29일까지 대구제일교회에서 열린 제55회 총회에서는 매년 11월 첫 주일을 농촌주일로 정하고, “총회산하 읍 소재지 교회 이상 자립한 교회에서는 반듯이 농촌 교회 1개 처 이상을 정하여 자매결연을 하고 농촌 교회 자립을 후원”하기로 했다.
03
재정 자립과
교회 성장

1) 신학교의 발전과 신학의 자립

본 교단 산하에는 7개의 신학대학(대전신학대학교, 부산장신대학교, 서울장신대학교, 영남신학대학교, 장로회신학대학교, 한일장신대학교, 호남신학대학교)이 있으며, 본 교단의 신학적 정체성에 따른 목회자 후보생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1901년 설립된 장로회신학대학교를 시작으로, 영남신학대학교가 1913년 보통성경학교로 설립되고, 한일장신대학교가 1922년 전도부인 양성학교로 설립된다. 한국전쟁 직후, 전후 교회지도자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부산장신대학교가 1953년, 서울장신대학교, 대전신학대학교, 영남신학대학교가 1954년, 그리고 호남신학대학교가 1955년에 본격적인 신학교육을 시작했다. 1985년 9월 10일 장로회신학대학 교수들이 발표한 ‘신학성명’은 본 교단 신학교육의 자립과 관련해 중요한 계기로 평가된다. 총 7개의 명제“우리의 신학은 복음적이며 성경적이다.” “우리의 신학은 개혁주의적이며 에큐메니칼하다.” “우리의 신학은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에 봉사한다.” “우리의 신학은 선교적인 기능과 역사적 사회적 참여의기능을 수행한다.” “우리의 신학의 장은 한국이요, 아세아요, 세계이다.” “우리의 신학은 기술사회 문제들에 응답하여야 한다.” “우리의 신학은 대화적이다.”로 구성된 본 교단 신학의 자립에 관해 선언했다.

 

2) 한미장로교회 협정(1973)과 재정 자립(1979)

1973년 제58회 총회에서 협동위원회는 “1969년 1월 1일부터 1975년 12월 31일까지를 기간으로 한 3자매교회(대한예수교장로회, 호주장로회, 미국남장로회, 미국연합장로회 교회)와 상호협약이 완료됨에 따라서 새로운 협약을 위해 1973년 4월 25~27일까지 회합을 가지고 새로운 협약을 협정하고 상호협정서 체결을 통해 대한예수교장로회는 피선교 교회의 위치에서 독립적이고 동등한 선교동역자의 위상을 갖게 됐다. 제58회 개최 전인 1973년 7월 10일 기독교회관에서 총회 임원과 협동위원회가 연석회의를 열었는데, 이 자리에서 선교부 재산처리 자금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결의했다.

① 자금의 상당 부분을 장로회신학대학과 기독공보의 자립금으로 한다. ② 기타 긴 안목으로 본 총회적 사업과 연합사업을 위해 (기금)으로 배분한다. ③ 지역적 특색 있는 사업을 위해 배분한다.

서울 영락교회에서 열린 제59회 총회에서 총회유지재단 이사회는 1973년 1월 27일 재단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유지재단 설립 인가(허가번호 266호)를 받았고, 12월 18일에 법인등기필(등기번호 1295)했다고 보고했다.

 

3) 교회개척운동(1974)

1964년에 조직된 한국복음화운동추진회는 “3천만을 그리스도에게로”라는 주제로 조직적이고 전국적인 복음화운동을 시작했다. 1965년 한 해 동안 2천여 회 이상의 집회를 개최하는 등 괄목할 만한 부흥과 성장의 결과를 가져왔다. 민족복음화운동은 1970년 이후의 본 교단의 성장운동에 밑거름이 됐다. 1971년 제56회 총회에서 전국전도부흥집회위원회는 1971년을 “전도의 해”로 정하고 국내 총 28개 도시에서 집회를 진행했는데 전국 복음화를 위한 조직적인 노력은 교회 개척을 위한 총회적 차원의 노력으로 구체화됐다. 1974년 제59회 총회에서 선교 90주년을 맞아 1974년 10월부터 1975년 9월까지를 ‘교회 개척의 해’로 정하고, 이 기간에 300개 교회를 개척하기로 기립표결로 가결했다.

연합정신은 본 교단의 정체성의 근간을 형성한다. 합동 측과의 분열 이후 본 교단은 합동 측을 비롯한 여타 연합 및 협력을 위해 주도적으로 노력했으며, 또한 한국 사회의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에서 시국선언문의 채택 및 산업선교와 농어촌선교를 통해 적극적인 해결을 모색했다. 이러한 본 교단의 활동은 신학과 재정에 있어서 명실상부한 자립적인 교회로서의 모습을 갖추는 동시에 전국복음화운동과 교회개척운동을 통해 한국적 장로교회의 성장을 모색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교회개척운동은 1992년의 만사운동과 2008년의 300만성도운동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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