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학교의 발전과 신학의 자립
본 교단 산하에는 7개의 신학대학(대전신학대학교, 부산장신대학교, 서울장신대학교, 영남신학대학교, 장로회신학대학교, 한일장신대학교, 호남신학대학교)이 있으며, 본 교단의 신학적 정체성에 따른 목회자 후보생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1901년 설립된 장로회신학대학교를 시작으로, 영남신학대학교가 1913년 보통성경학교로 설립되고, 한일장신대학교가 1922년 전도부인 양성학교로 설립된다. 한국전쟁 직후, 전후 교회지도자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부산장신대학교가 1953년, 서울장신대학교, 대전신학대학교, 영남신학대학교가 1954년, 그리고 호남신학대학교가 1955년에 본격적인 신학교육을 시작했다. 1985년 9월 10일 장로회신학대학 교수들이 발표한 ‘신학성명’은 본 교단 신학교육의 자립과 관련해 중요한 계기로 평가된다. 총 7개의 명제“우리의 신학은 복음적이며 성경적이다.” “우리의 신학은 개혁주의적이며 에큐메니칼하다.” “우리의 신학은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에 봉사한다.” “우리의 신학은 선교적인 기능과 역사적 사회적 참여의기능을 수행한다.” “우리의 신학의 장은 한국이요, 아세아요, 세계이다.” “우리의 신학은 기술사회 문제들에 응답하여야 한다.” “우리의 신학은 대화적이다.”로 구성된 본 교단 신학의 자립에 관해 선언했다.
2) 한미장로교회 협정(1973)과 재정 자립(1979)
1973년 제58회 총회에서 협동위원회는 “1969년 1월 1일부터 1975년 12월 31일까지를 기간으로 한 3자매교회(대한예수교장로회, 호주장로회, 미국남장로회, 미국연합장로회 교회)와 상호협약이 완료됨에 따라서 새로운 협약을 위해 1973년 4월 25~27일까지 회합을 가지고 새로운 협약을 협정하고 상호협정서 체결을 통해 대한예수교장로회는 피선교 교회의 위치에서 독립적이고 동등한 선교동역자의 위상을 갖게 됐다. 제58회 개최 전인 1973년 7월 10일 기독교회관에서 총회 임원과 협동위원회가 연석회의를 열었는데, 이 자리에서 선교부 재산처리 자금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결의했다.
① 자금의 상당 부분을 장로회신학대학과 기독공보의 자립금으로 한다.
② 기타 긴 안목으로 본 총회적 사업과 연합사업을 위해 (기금)으로 배분한다.
③ 지역적 특색 있는 사업을 위해 배분한다.
서울 영락교회에서 열린 제59회 총회에서 총회유지재단 이사회는 1973년 1월 27일 재단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유지재단 설립 인가(허가번호 266호)를 받았고, 12월 18일에 법인등기필(등기번호 1295)했다고 보고했다.
3) 교회개척운동(1974)
1964년에 조직된 한국복음화운동추진회는 “3천만을 그리스도에게로”라는 주제로 조직적이고 전국적인 복음화운동을 시작했다. 1965년 한 해 동안 2천여 회 이상의 집회를 개최하는 등 괄목할 만한 부흥과 성장의 결과를 가져왔다. 민족복음화운동은 1970년 이후의 본 교단의 성장운동에 밑거름이 됐다. 1971년 제56회 총회에서 전국전도부흥집회위원회는 1971년을 “전도의 해”로 정하고 국내 총 28개 도시에서 집회를 진행했는데 전국 복음화를 위한 조직적인 노력은 교회 개척을 위한 총회적 차원의 노력으로 구체화됐다. 1974년 제59회 총회에서 선교 90주년을 맞아 1974년 10월부터 1975년 9월까지를 ‘교회 개척의 해’로 정하고, 이 기간에 300개 교회를 개척하기로 기립표결로 가결했다.
연합정신은 본 교단의 정체성의 근간을 형성한다. 합동 측과의 분열 이후 본 교단은 합동 측을 비롯한 여타 연합 및 협력을 위해 주도적으로 노력했으며, 또한 한국 사회의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에서 시국선언문의 채택 및 산업선교와 농어촌선교를 통해 적극적인 해결을 모색했다. 이러한 본 교단의 활동은 신학과 재정에 있어서 명실상부한 자립적인 교회로서의 모습을 갖추는 동시에 전국복음화운동과 교회개척운동을 통해 한국적 장로교회의 성장을 모색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교회개척운동은 1992년의 만사운동과 2008년의 300만성도운동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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