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무엇을 믿는지를 세상과 교회에 선언하는 것은 신앙고백의 영역에 속한다. 본 교단은 개혁주의 신학에 기초한 “대한예수교장로회 신앙고백서”를 1986년에 제정해 본 교단의 정체성과 사명이 무엇인지를 세상에 선언하는 한편, 이단에 대처하는 기준과 다음세대를 위한 기독교교육의 근간으로 삼는다. 이러한 신앙고백은 세계 교회와의 협력과정 속에서 정의, 평화, 창조질서의 보존의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1) 대한예수교장로회 신앙고백서(1986)
고백서의 의의에 대해 이형기는 “오늘날과 같이 신앙과 신학이 혼선과 무질서를 노출시키며 교파 간의 문제가 많은 상황에서, 그리고 성숙하지 못한 교회의 상황에서, 본교단이 공포한 신앙고백이야말로 한국 장로교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길잡이가 아닐수 없다.”고 평가했다.
2) 이단 연구와 대처
총회의 이단 대처는 일제강점기 초기의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의 설립(1912)과 함께 시작한다. 1915년 제4회 총회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안식교)의 교리에 동조하거나 참여하는 자는 ‘면직 제명’하기로 최초의 이단문제 관련 결의를 했다. 1933년 제22차 총회는 신비주의적 활동들로 인해 교회가 혼란을 겪게 되자, 이용도, 백남주, 한준명, 이호빈, 황국주의 활동에 문제를 제기하고, “각 로회 지경 내 이단으로 간쥬할 수 잇는 단테(리룡도, 백남쥬, 한준명, 리호빈, 황국쥬)에 미혹지 말나고 본 총회로셔 각 로회에 통첩을 발하야 쥬의식히기로” 결의했다. 총회의 이단관련 결의들은 대부분 1990년대 이후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사실은 최근 한국 교회 이단 문제의 심각성을 반영하고 있다. 이단들은 일제강점기하에서 뿌리를 내리고, 해방 후 한국전쟁 시기에 본격화되었으며, 군사정권하에서 급속히 성장했다. 그리고 최근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정보화 속에서 이단들은 치밀한 포교전략을 통해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며 한국 교회에 도전하고 있다. 통일교와 전도관이 한국전쟁 시기를 대표하는 이단들이었다면, 최근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이단들은 안상홍의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와 이만희의 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성전이다. 총회의 이단 연구와 대처는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와 이단사이비상담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1977년 제62회 총회는 ‘사이비종교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통일교에 대한 본격적인 대처활동을 시작했다. 1990년 제75회 총회는 ‘사이비신앙운동 및 기독교이단대책위원회’를 신설, 1991년 제76회 총회에서는 ‘사이비이단관련조사처벌대책위원회’와 ‘사이비이단문제상담소운영위원회’를 설치, 1993년 제78회 총회는 세 위원회를 통합해 ‘사이비이단대책위원회’로 운영하기로 했다. ‘사이비이단대책위원회’는 2003년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로 명칭이 변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2007년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는 한국 교회에서 가장 처음으로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 운영지침”을 만들어, 이단연구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이단규정과 함께 재심을 통한 이단규정 철회의 길도 열어 놓았다.
3) 세계개혁교회연맹(WARC) 총회(1989)
본 교단은 1912년 WARC에 가입을 했으며, WARC는 1919년 3·1운동을 지지하기도 했다. 제71회 총회에서 장로교회 최대 연합체인 세계개혁교회연맹(WARC) 제22차 총회 한국유치 경과보고를 했고 WARC 총회는 1989년 8월 15~27일에 연세대학교100주년기념관에서 개최되었는데 서울 총회는 “정의, 평화, 창조질서의 보전”(Justice, Peace, and Integrityof Creation)의 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어그러진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정의의 계약”, “핵시대의 하나님의 평화의 계약”, “하나님의 창조의 계약”에 대해 연구하고 토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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