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연구경위
강원동노회는 “요가에 대하여 ‘해도 된다,’ ‘해서는 안 된다’는 팽팽하게 맞선 두 가지 의견에 직면하여, “이러한 때에 어떻게 교인을 지도해야 할 것인지 혼란”스럽기에 “요가에 대한 총회의 입장을 명쾌하게 밝혀” 달라고 헌의하였다. 그리고 본 청원 건이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에서 연구하기로 결의하여 조사와 연구가 진행되었다.
II. 연구보고
1. 요가라는 용어는 ‘결합하다’의 파생어이다.
요가(Yoga, 瑜伽)라는 용어는 범어(Sanskrit)로 동사 ‘결합하다’, ‘함께 연결하다’, ‘묶어두다’라는 의미를 가진 어근(yuj, 유즈)으로부터 파생된 단어이고, 명사로는 ‘결합’, ‘억제’, 그리고 ‘삼매’[三昧, 해탈/결합/합일/전체성/내부로의 흡수/정신의 총체적 집중/열반/초월/무아경]의 뜻을 가진다. 이런 관점에서 요가란 요기(Yogi, 요가 수행자)가 신의 의지와 인간의 의지, 주체와 객체, 마음[정신]과 육체 등의 합일을 목적으로 고대 인도로부터 전해져 온 자아와 우주의 근원을 깨닫는 수행법이다.
2. 요가의 기원은 고대 인더스 문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요가의 기원은 대략 B.C. 3000년에서 B.C. 2000년경까지 번영했던 인더스 문명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B.C. 3000년 전의 유물에서 요가 수행의 기본자세인 결가부좌(結跏趺坐)를 한 시바신(힌두교의 주요 신들 중에 하나)상이 발견된다. 인도의 종교인 바라문교(힌두교의 전신)나 불교나 힌두교 등은 요가 수행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 한편, 요가의 수행법은 바라문교의 문헌인 『리그 베다』(B.C. 11-16세기)와 『우파니샤드』(B.C. 13세기)에 나타나 있고, 다른 한편 힌두교화로 인해 모든 계층이 요가에 접근할 수 있도록 구상된 문헌인 『마하바라타』(B.C. 6-7세기)에도 등장한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경우 요가는 불교의 전파에 따라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서 삼국시대 때 들어와 전승되고 확산된다.
3. 요가의 근본 경전은 『요가 수트라』이다.
A.D. 400-450년경 파탄잘리는 고대로부터 전수된 요가 수행법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체계화하여 요가의 근본 경전인 『요가 수트라』를 편찬한다. 인도사상사에서 보편적으로 요가의 위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요가 수트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왜냐하면 파탄잘리에 의해 성문화된 고전 요가의 대표작인 『요가 수트라』는 무수한 형태의 비(非)체계적인 대중적 요가와 비브라만교의 요가, 즉 불교의 요가와 자이나교의 요가뿐만 아니라 마술적이고 신비적인 구조를 가진 요가와는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4. 우리나라에서는 ‘하타 요가’와 ‘라쟈 요가’가 유행하고 있다.
요가에는 여덟 가지의 유파가 있다. 이는 다음과 같다. ① 신체 수련에 중점을 두는 ‘하타 요가’, ② 마음 작용의 억제를 위한 정신적 수련에 치중하는 ‘라쟈 요가’, ③ 지식 또는 지성적 깨달음을 갈망하는 ‘지냐나 요가’, ④ 선행 의무의 충실한 이행에 몰두하는 ‘카르마요가’, ⑤ 근원의 소리인 ‘옴’이라는 주문(呪文)을 외우는 것에 집중하는 ‘만트라 요가’, ⑥ 우주의 최고신에 대한 종교적 헌신에 몰입하는 ‘바티크 요가’, ⑦ 성적 에너지 승화에 초점을 맞추는 ‘쿤달리니 요가’, ⑧ 정욕 통제에 의한 육신의 해방에 중점을 두는 ‘탄트라 요가.’ 이러한 모든 유파의 공통점은 요가의 본질로서의 마음의 평정함에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하타 요가와 라쟈 요가가 인기가 있는데, 결국 신체 수련인 하타 요가는 정신 수련인 라쟈 요가에서 행해지는 ‘집중’(集中)과 ‘명상’(冥想)으로 삼매에 도달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에 해당한다. 물론 현재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하타 요가’와 ‘라쟈 요가’는 궁극적으로 『요가 수트라』에 의존한다.
5. 요가는 철학이요 종교이다.
① 요가학파는 종교적 ‧ 철학적 체계를 가지고 있다. 종교학자이며 요가 수행가인 미르체아 엘리아데의 저서 『요가』에 따르면, “요가는 철학이요 종교이다. (...) 인도에서는 종교와 철학이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 철학체계는 종교적 의식과 수행이 바탕이 된다.” 심지어 요가는 “종교로부터 철학, 심리학, 생리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 걸쳐서 인간의 생활 원리”를 가르친다. 이처럼 인도에서 요가는 우파니샤드 철학 시대 이후 불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브라만교, 자이나교, 아지비카교, 힌두교, 불교 등)에서 행해진 공통적인 수행법이다. 이처럼 요가는 본질적으로 인도인의 정신생활의 뿌리인 동시에 종교적 실천의 공통된 지주이다. 고대 인도에는 육파 철학이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요가학파’이다. 즉, 이 학파는 육파 철학에서 독립된 파로써 다른 여러 학파의 공통분모를 구성한다. 상술한 『요가 수트라』는 요가학파의 근본 경전으로써 절대자의 최고선을 인정한다.
② 요가는 이른바 범신론적 ‘범아일여’(梵我一如) 사상을 지향한다. 요가 사상은 인도 철학체계뿐만 아니라 이를 기초로 ‘해탈’을 얻고자 하는 종교적 수행 방식이다. 요가 수행은 범아일여적인 깨달음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다. 즉 요가의 목표는 참된 자아인 ‘아트만’과 우주적인 실재인 ‘브라흐만’이 하나라고 자각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범아일여의 실현을 성취하는 요가는 종교적인 수행법으로 전인적인 훈련, 즉 신체적이고 정신적이고 영적인 훈련인 것이다. 결국 요가는 단지 관념적인 사상 체계를 넘어 종교를 포괄하고 있다.
③ 이런 측면에서 요가는 건강 증진과 마음의 수양을 위한 단순한 운동이라 말할 수 없다. 요가는 힌두교의 종교 의식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K목사에 의하면, “대부분의 크리스천이 운동 삼아 요가를 많이 하지만, 명상에 빠지다 보면, 영적, 종교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 실상 요가는 단순한 운동, 스트레칭, 다이어트가 아니다. 한마디로 요가는 몸으로 하는 힌두교의 의식이다. 이를 지속적으로 하게 되면, (...) 그 영과 합일(일치)되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는 보편적으로 요가가 종교가 아닌 운동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요가는 종교이기 때문에 힌두교 그 자체라 말할 수 있다. 요가는 본질적으로 3억 3천만여 신을 숭배하는 다신교인 힌두교에 근거한다. 결국 요가는 힌두교의 선교 전략으로 사용될 개연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도 철학자이자 불교학자인 정태혁은 “다른 종교를 믿으면서도 요가의 길로 들어갈 수 있다. 오히려 요가를 닦음으로써 불교나 그리스도교, 그 밖의 어떤 종교라도 그 종교의 정신을 더 잘 알게 된다고 할 수 있으니, 요가는 모든 종교적 수행의 근본이 된다고도 할 수 있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6. 요가의 주요 수행법에는 운동법, 호흡법, 명상법 등이 있다.
요가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8단계의 수행법은 ‘정신적인 아름다움’(제1단계의 금계[자기 훈련/자제], 제2단계의 권계[심신의 청정/고행], 제5단계의 제감[포기], 제6단계의 집중[응념/종제/정신통일], 제7단계의 명상[정려/깊은 사색/선정], 제8단계의 삼매)와 ‘육체적 아름다움’(제3단계의 운동법[좌법/체위법], 제4단계의 호흡법[조식법])을 추구한다. 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운동법과 호흡법은 하타 요가에 속하며, 정신 수행법인 제감과 집중과 명상과 삼매 등은 라쟈 요가에 속한다. 운동법의 기본자세는 결가부좌이며, 호흡법의 근본은 우주의 리듬을 지향하는 리듬 있는 심호흡이다. 물론 요가의 궁극적인 목표인 ‘해탈’(解脫)의 경지로서의 삼매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집중’과 ‘명상’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 결과로 요기는 신과의 신비적 합일을 이룸으로서 해탈에 도달하게 된다. 이런 요가 수행법은 ‘엑스터시’를 전혀 허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요가는 오히려 ‘엔스타시스’(영혼의 이탈을 통하지 않고 삶의 현실에서 자유와 해탈을 지속시키는 자기 몰입), 즉, 삼매를 그 목표로 삼기 때문이다.
7. 요가는 신인합일을 목표로 삼는다.
요가의 목표는 요가를 수행하는 요기들과 “힌두교 신과의 합일”로 간주된다. 본질적인 의미에서 바라보면, 하타 요가의 경우는 분명 힌두교의 시바신에게 바쳐지는 힌두교인의 종교적인 수행 방법이다. 요가 전문가들은 요기들이 요가의 단순한 동작만 따라 해도 그 동작 하나 하나에는 ‘신인합일’이란 궁극적인 목적을 추구하기 위한 동작의 의미를 가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래에서 언급될 뉴에이지 운동의 속성인 범신론적인 신비주의에 근거하여 신과 요기의 자아가 하나를 이루는 신인합일이라는 최후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곧 요가의 목표이다. 요가 수행을 통한 대가로 주어지는 천인합일 내지 주객합일의 의미를 내포하는 신인합일은 무아의 세계, 해탈 내지 깨달음의 세계를 지향한다.
8. 요가 사상은 자력구원을 주장한다.
요가학파의 수행법 가운데 최종단계(8단계)인 ‘삼매’는 주객이 융합된 상태, 즉 일상에서 경험하는 세계와는 다른 고차원적인 세계를 말한다. 이는 요기들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즉 자력으로 구원을 얻는 것으로써 순수 자아가 물질세계로부터 벗어나 절대 경지에 들어 갈 수 있는 해탈을 성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요가 사상에 있어서 최대의 공덕은 구원으로서의 해탈을 지칭한다. 요가는 요기 자신에게 닥쳐오는 고행(苦)을 자기 안에서 찾도록 하며 요기 스스로 해결하는 방법을 명시한다. 이 방법이 곧 요가의 수행법으로서의 운동법, 호흡법과 명상법 등이다. 요가의 수행법에서 가장 중요시 되는 결가부좌 자세로 하는 명상의 목적은 진리를 깨닫고, 그 진리와 융합하려는 염원을 달성하려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자력구원으로서의 해탈인 것이다. 요가에서 해탈의 근거, 즉 구원의 근거는 요기 자신이 ‘밖’에서부터가 아니라 ‘안’에서 자력으로 자기 관조를 정교화함으로써 참 자아를 발견하는데 있다. 요기 자신이 스스로 이루는 구원의 순간은 자기 안에 있는 기(氣)와 우주 안에 있는 기가 하나가 되는 해탈의 지점인 신인합일이다.
9. 예수님을 요가 수행자라고 주장한다.
어떤 요가 전문가는 예수님께서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기간 동안 하타 요가 수행을 위해 인도의 카슈미르에서 요기의 생활을 했다고 주장한다. 진리의 깨달음을 얻고, 계시와 신통력을 받아 초능력을 발휘하는 예수님이 행하신 신약성경에 기록된 기적들은 모두 요가 훈련의 결과라고 요가 전문가는 간주한다. 심지어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조차 요가 수행법인 호흡 조절법을 통해 실제적 죽음이 아닌 심장박동이 잠시 멈춘 깊은 수면이라는 것이다. 이는 요가 명상가인 예수님이 하타 요가를 수행함으로서 육신을 정신적인 성숙을 위한 도구로 사용했기 때문이라는 주장한다.
10. 요가는 대표적인 뉴에이지 운동이다.
요가 사상은 “종교적인 신념의 수준으로 사람들을 현혹하고,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위협하는 오늘날 가장 도전적인 세계관”으로 체계화되어 있는 인본주의 운동으로서의 ‘뉴에이지’(New Age) 운동의 일종이다. 기독교적 세계관을 치명적으로 위협하는 뉴에이지 세계관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요가는 운동법과 호흡법, 그리고 명상법 등으로 육체를 무력하게 하고 요기 안에 내재되어 있는 자아의 능력을 극대화함으로써 ‘인간이 곧 신이 된다’고 가르친다. 요가를 수행하는 요기 자신이 신이 되는 것은 요가의 궁극적인 목표인 해탈의 결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만물은 하나’라는 논리로 구성되어 있는 요가 사상의 체계는 일원론적이고 범신론적인 뉴에이지 철학의 토대 위에 세워져 있다. 따라서 요가의 실체의 본질은 개별적 인격의 정체성을 거부하면서 힌두교뿐만 아니라 불교나 자이나교 등에 침투하여 종교혼합주의를 지향하기에 이른다.
11. 요가는 전형적인 영지주의이다.
종교의 용광로인 혼합종교주의를 지향하는 요가 사상은 전형적인 영지주의에 몰입되어 있다. 왜냐하면 요가 사상은 본질적으로 물질세계를 부정하는 영지주의에 채색되어 있기 때문이다. 요가의 가르침에 따르면, 인간의 자아가 무지하면 물질세계에 머물 수밖에 없지만, 요가의 수행자인 요기가 다양한 요가 수행법을 통해서 무지를 깨뜨려 순수 자아의 깨달음(覺)을 경험할 때 비로소 물질세계는 정신세계의 상태 속에 흡수되고, 그와 동시에 현상계의 다양성을 소멸하게 된다. 한편, 힌두교는 영혼 구원에 대한 세 가지 길을 제시하는데, 그것은 업보를 쌓는 길, 신을 사랑하므로 완전한 복종으로 걷는 헌신의 길, 그리고 신비한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지식의 길이다. 여기에서 요가의 영지주의적인 구원론은 세 번째 길을 의미한다. 영지주의적 구원은 진리의 깨달음을 통한 구원을 뜻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개인의 정신으로서의 ‘아트만’은 대우주의 정신인 ‘브라만’에 귀속되어 요기 자신이 대우주 속의 일부라고 깨닫는 순간이 바로 구원의 순간이다. 이런 뜻에서 요가의 다양한 수행법은 깨달음을 추구한다. 요기는 요가를 통해 깨달음의 길을 걷는다.
12. 요가는 윤회설을 주장한다.
요가의 궁극적인 목적은 힌두교에서 영원한 ‘윤회’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일환으로 요기들이 명상을 수련하여 참된 자기 수행을 하게 되면 신인합일, 즉 정신의 영원한 자유에 대한 깨달음인 ‘해탈’을 경험하는데 있다. 해탈이란 곧 악과 고행(苦), 특히 윤회의 굴레 속에 갇힌 업보(業, 카르마)라는 관념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즉 윤회를 극복하기 위한 “요가는 인간의 영혼이 자유인 해탈을 목표로 한다. (...) 요가는 ‘해탈’을 얻기 위한 적절한 기법들, 수단들의 총합”인 것이다. 따라서 요기들의 “궁극적 목표는 진리의 소유가 아니라 해탈, 절대적 자유의 성취이다.” 분명한 것은 힌두교에서 끝없는 윤회의 족쇄로부터 진정으로 해방하기 위한 해탈은 요가 수행법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따라서 요가는 단순히 운동, 정신 안정, 스트레스 해소, 다이어트 등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13. 요가의 사상은 연금술과 샤머니즘 사상까지 포괄한다.
본래 인도의 요가는 연금술적인 요가를 추구한다. 물론 요가와 관련해서 연금술과 회춘과 장생은 상호간 관계를 맺고 있다. 인도에서 생명을 연장하는 수은(水銀)이 ‘해탈’이라는 지상 목표에 이르는 직접적인 수단이 된다. 연금술에서 얻는 묘약은 탄트라 요가가 추구하는 불멸에 상응하고, 연금술과 하타 요가는 긴밀히 연계되어 있다. 게다가 요가의 영향을 받은 후기 불교는 라마교 형태로 북아시아와 시베리아의 샤머니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샤머니즘 특유의 엑스터시와 고전 요가의 고유한 삼매를 통한 해탈은 서로 무관하지 않다.
14. 요가는 심지어 교회와 기독교인의 일상에까지 침투되어 있다.
①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요가는 웰빙의 열풍으로 말미암아 심신수련과 치료요법으로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요가학원 내지 요가센터를 비롯하여 백화점 문화센터, 노인대학, 구민 복지관, 초등학교(방과 후 학습시간) 등에서 요가가 유행하고 있다. 또한 요가 명상 학습법을 통해 성적을 향상시키려고 하는 초 ‧ 중 ‧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요가는 상당히 인기가 있을 뿐 아니라 대학이나 대학원에서는 요가 명상과 관련된 학과가 생겨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심지어 요가의 침투는 교회와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예외라고 말할 수 없다. 요가 강습을 알리는 광고가 교회 홈페이지에 실리기도 하고, 교회의 문화센터에서 요가 강의가 개설되기도 한다. 덧붙이자면 기독교 계통의 대학조차 요가 과목을 개설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YMCA에서도 요가를 가르치기도 한다. 그 뿐만 아니라 기독교인들 가운데 요가 지도자 자격증에 도전하는 사람도 간혹 있다.
② 한국 기독교 안에서는 요가에 대해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 기독교는 미국 기독교의 영향을 쉽게 받게 되는데, 미국에서는 이미 기독교인 요기들이 이른바 ‘크리스천 요가’로서의 ‘홀리[신성한] 요가’를 수행함에 있어서 만트라 요가에서처럼 ‘옴’이라는 소리 대신 ‘아멘’으로 대체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힌두교의 색체를 배제하기 위해 그들은 요가라는 말 대신 ‘높낮이 팔굽혀펴기’로 변경하여 부른다고 한다. 이러한 영향을 한국 교회가 받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 종교가 아닌 단순한 운동으로 부담감 없이 요가를 즐기는 현실에 직면한 한국교회와 기독교인들에게 과연 요가는 성경적인 방법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III. 연구결론
1. 우선 요가의 본질적인 철학적, 종교적 의미와 그 정신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사료된다. 구태여 요가라는 이름으로 운동을 할 필요가 있는 것인지, 교회 안에서조차 ‘크리스천 요가’라는 이름을 붙여 운동을 해야 하는 것이지, 기독교와 요가가 어울릴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되물어야 할 것이다. 크리스천 요가를 쉽게 허용하게 되면, 크리스천 쿵후, 크리스천 점성술, 크리스천 최면술, 크리스천 염불, 크리스천 기운동, 크리스천 마음수련, 크리스천 강신술, 크리스찬 초월명상 등도 허용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2. 비록 요가가 건강에 미치는 효과를 감안하더라도 교회가 요가를 받아들이기에는 위험한 요소가 많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신체 운동에 중점을 두는 ‘하타 요가’에 깊이 빠져들면 들수록 자연스럽게 정신 수련에 치중하는 ‘라쟈 요가’로 전이되어, 타종교와 맞닿아질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사료된다.
3. 상술한 바와 같이 본질적인 요가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요가는 철학과 종교이며, 기독교 세계관에 전적으로 배치되는 뉴에이지 운동의 세계관에 근거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 아니라 자력 구원을 주장하며, 범신론적 신비주의에 의한 신인합일 사상을 추구하며, 업보로부터 해탈하는 윤회사상을 가르치며, 교회사 속에서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어왔던 영지주의 사상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에 요가는 비성경적이고 비기독교적인 것으로써 기독교와 교회를 위협하고 있다고 사료된다.
4. 이상을 고려해 볼 때, 요가가 정서 안정, 스트레스 해소, 다이어트, 스트레칭, 우울증 치료 등을 위한 단순한 운동이라 단정하면서 교회가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사료된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도 요가가 교회 안에 들여오거나, 어떤 형식으로든 요가를 지원하거나 관여해서도 안 된다. 요가의 기원과 목적 자체가 이방신을 섬기는 종교적 행위일 뿐 아니라 힌두교인으로 되게 하는 수단임을 감안하면, 교회는 요가의 위험성을 철저히 교육해서 성도들이 그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요가라는 용어 자체가 힌두교의 간접 전도를 초래하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는 요가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교회는 교인들의 신앙생활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 요가의 참여를 금해야 할 것이다.
IV.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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