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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자료] 통일, 하나님 나라 운동

남북한 2009-06-01 (월) 15:59 15년전 4114  

통일, 하나님나라 운동 이범성(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선교역사) 통일은 하나님나라 운동이다. 그리고 하나님나라 운동은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목적)와 양식(방법)이다. 그래서 통일은 교회의 선교적 과제가 되는 것이다. 통일은 하나님나라의 모양을 추구해야 한다. 하나님나라는 전쟁이 없는 곳이고, 약한 자와 강한 자가 차별이 없이 사회적 혜택을 누리는 곳이다. 그곳은 평화로운 곳이며, 희망의 노래가 있는 곳이다. 마찬가지로 통일은 사회통합이 경험되는 곳이다. 하나님나라는 이 땅의 나라에서도 사회통합이 이루어지는 통일의 현장에서 부분적으로 경험된다. 그리고 이 통일의 사건은 하나님나라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게 만든다.(요 17: 21)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세상 삶의 주제를 다루는 '삶과 봉사'위원회와 믿음의 주제를 다루는 '신앙과 직제'위원회가 각각 추구하는 '통일된 사회'와 '일치된 교회'는 서로 가까운 거리에서 동일한 한가지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통일된 사회가 일치된 교회의 궁극적 목적이 되고, 일치된 교회는 통일된 사회의 모델이 되기 때문이다. 세상의 일과 교회의 일이 두 가지가 아니고 하나다. 교회가 믿는 천지창조는 이 사회가 몸담고 있는 환경에 대한 것이며, 교회가 소망을 두는 그리스도는 이 세상을 위한 소망이고, 교회가 기다리는 종말은 곧 세상이 두려워하는 종말과 같은 종말이다. 교회의 신앙은 언제나 세상의 일에 대한 신앙이다. 최근에 WCC의 '삶과 봉사'위원회와 '신앙과 직제'위원회가 합류를 얘기하고 있는 것이 그 이유이다. 정치적 통일은 사회적 통합으로 이어져야 그 사회적 가치가 있다. 20세기 후반에 분단된 네 민족들 중에 21세기에 들어와서도 통일을 이루지 못한 민족은 한반도의 민족뿐이다. 그러나 이미 통일을 이룬 다른 세 민족 - 베트남, 독일 그리고 예멘 - 도 여전히 사회통합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 있다. 만일 한민족이 정치적 통일을 이룬 이후 짧은 기간 내에 사회통합을 이룰 수 있다면 남보다 뒤쳐진 통일도 그리 아쉬울 것이 없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통일은 궁극적으로 통합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통합을 위해 통일운동을 해야겠다. 어쩌면 사회통합을 위한 시도들이 통일 이전에도 통일의 기쁨을 미리 경험하게 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는 한민족의 통일문제에 80년대 초부터 깊이 관여해왔고, 그 결과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는 일에 크게 공헌하였다. 1981년 제 4차 한독교회협의회 때부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가 민족통일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 동기는 민족주의적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고, 민주화를 위해 장애가 되고 있는 반공이데올로기를 제거하자는 것이었다. 이후 교회의 통일운동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한국교회는 1990년에 독일의 민족통일을 경험하게 되었는데, 독일의 통일과정에서 '통일은 정치적 통일이 전부가 아니고 사회적 통합이 뒤따라야만 온전한 통일을 이루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국 통일운동은 정치적 통일 자체를 목적 삼는 것이 아니라 그에 수반되어야 하는 사회통합을 목표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교회-역사적 관계를 기초로 한국교회는 독일교회의 통일운동에서 사회통합에 ‘공과 실’을 가져온 교회의 역할을 배울 수 있다. 독일통일의 과정에서 동서독교회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으며, 또한 그 역할은 이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듯 보인다. 사실적으로 독일교회의 역할이 없는 독일통일은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역할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기독교국가인 독일에서 교회의 역할은 종종 국가나 공공단체의 역할과 구분이 없이 혼용되어 이해되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서독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동독의 경우는 그 사정이 달라서 1969년부터 그때까지 동서독국가와 상관없이 유지되고 있던 하나의 교회가 동독정부의 압력에 의해 독일개신교협의회(EKD)로부터 동독개신교연맹(BEK)으로 분리되면서 더 이상 과거에 당연했던 국가교회(Volkskirche)의 사회적 위상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동서독교회가 마련한 통일의 기초를 서독정부가 매우 시기적절하게 사용함으로써 통일이 다만 정치적 기술로 달성된 것처럼 오해되었기 때문이다. 민족통일을 위한 독일교회의 역할은 서독교회의 디아코니아적 파트너십(Diakonische Partnerschaft)과 동독교회의 예언자적 선포(Prophetische Kerygma)로서 대표된다. 서독교회는 분단 40년 동안 약 3:1의 인구적, 지면적 비율로 우세한 서독교회가 동독교회를 주교회 단위와 노회 단위와 시찰회 단위와 개 교회 단위에 이르기까지 자매결연을 맺고 책임적 원조와 지속적 만남의 관계를 유지해 왔다. 이로써 분단된 두 국가는 한 민족이라는 평화와 일치의 관계가 분단 이후에도 지속될 수 있었다. 동독교회는 유기적으로 구조화된 동독사회주의 체제에서 유일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영역이었다. 그래서 교회는 그 사회의 모든 정치적 대안 세력들이 모이는 집합장이 되었다. 동독교회는 스스로를 한 번도 야당적으로 규정한 적이 없지만, 그 구조적 조건 때문에 사실상 야당적 기능을 부여받을 수밖에 없었다. 1987년 말부터 1989년 11월까지 교회는 원하든 원하지 않던 간에 정치적 문제에 관여할 수밖에 없었고 통일을 위한 민주화 운동의 배양지요 원천이 되었다. 교회지도자들의 정치적 참여가 가장 의미있게 드러난 것은 원탁회의(Runde Tisch)로서 당시 독일개신교연맹 총무였던 지글러 목사(Martin Ziegler)는 그 기구와 직원들을 통해 원탁회의를 새 정부 조각을 위한 최고기구로서 정상궤도에 올려놓았다. 당시에는 교회만이 유일하게 동독의 모든 정치세력으로부터 신뢰를 받는 단체였던 것이다 구 동독인의 사회주의에 대한 입장은 동독교회와 마찬가지로 적대적이지 않았다. 그들 대부분이 사회주의 이념에 동의하고 있었으며, 정부의 실천에 대한 불만 때문에 개혁을 요구했던 것이지 사회주의 자체를 폐기할 생각은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서독정부가 급속도로 진행한 통일정책은 동독민주화운동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고, 서독디아코니아운동의 성과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리고 동독인들의 대다수는 통일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쉽게 자본주의의 약속을 믿었고, 서독인들과 맺어온 그동안의 자매결연관계를 소홀히 하였다. 서독인들도 이제는 더 이상 도움을 주고받을 필요가 없다는 동독인들의 태도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동서독인들이 통일 이후 소홀해진 자매결연관계를 다시 활성화하기 위해 시도한 동독-서독-슬로바키아 삼각결연관계가 자매관계를 돕는 자와 도움을 받는 자가 전제한다는 점에 있어서 동서독교회는 아직도 대부대모관계(Patenschaft)를 자매관계(Partnerschaft)로 발전시키지 못한 한계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사회통합은 대부대모관계가 아닌 자매관계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동화주의’에 대해 언급하려 한다. 통일된 동서독이 사회통합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통일을 주도한 서독이 통일의 상대역인 동독의 동등한 자격과 역할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통일은 전혀 새로운 사회구성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통일된 독일은 새로운 사회를 구성하지 않았다. 다만 서독에 동화되는 것이 사회통합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정치적 통일을 삶의 단절이라고 보고 있다. 통일된 새로운 사회에서 통일국가의 국민들은 통일사회를 정치적으로는 하나가 되었지만 문화적으로는 상이한 낯선 세계로서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살아오던 자신의 사고방식이나 생활방식에 의문이 제기되는가하면, 이제껏 모르고 지내온 사고방식을 가지고 낯선 행동을 하는 사람들과 갑자기 한 나라살림살이를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남북 예멘의 경우에는 남예멘이, 남북 베트남의 경우에는 남베트남이, 동서 독일의 경우에는 동독이 삶의 단절을 더욱 뚜렷하게 경험했다. 그리고 남북한의 경우에는 아마도 북한이 통일을 삶의 단절로서 더욱 뚜렷이 경험할 것이다. 통일은 통일의 주역보다는 그 상대역에게 더욱 뚜렷이 경험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통일의 주역에게도 통일은 어쨌든 새로운 사회의 경험이라는 점이다. 제 아무리 통일의 주역이라 할지라도 통일사회를 처음 경험하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통일을 미리 경험하거나 적어도 연습한 민족이 없고, 그리고 통일에 있어서는 어느 누구의 예견도 결코 들어맞지 않았다. 통일은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운 것이다. 이러한 와중에 무엇보다 어려운 문제는 통일의 주역이 이제껏 꾸려왔던 사회체제도 새로운 통일사회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통일주역이 가져온 가치체계라고해서 그것이 그 통일사회에 유효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통일된 사회는 새로운 사회의 가치체계를 필요로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의 주역은 스스로를 새 사회의 기준이라고 자처한다. 그리고 그 주역과 함께 통일사회에 들어선 상대역은 스스로를 통일사회에 입문하는 그 사회의 초보자로 인식하게 된다. 통일의 주역이 가졌던 모든 것은 모범 답안이고, 통일의 상대역이 그동안 배우고, 알고, 믿어온 모든 것은 하나같이 틀린 것이 된다. 통일의 주역은 모두 현명하고, 통일의 상대역은 모두 바보인 것이다. 과연 기존의 어떤 가치체계가 다른 새로운 사회에 대해 기준이라고 자처할 수가 있겠는가. 정해놓은 모범생과 정해놓은 낙제생만 있는 학교는 참 교육의 현장이 될 수 있는 조건을 이미 상실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정해놓은 주역과 정해 놓은 상대역이 있는 통일은 참 통일이 아니다. 실제로 지난 수십 년간 통일의 주역들은 그들의 통일사회에 모범답안 하나를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반면에 통일의 상대역에게서 통일사회를 위한 파편적 모델들이 찾아지기도 한다. 통일의 상대역만을 통일사회에 입문하는 초보자로 취급하는 것은 잘못이다. 통일의 주역이 서독이든, 남한이든 그것이 정해져 있는 한 통일은 완성되지 않는다. 사회통합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동독인의 적응능력에서 기인하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문제의 소재는 서독인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서독인들의 부당한 관계 설정, 즉 동독인을 대하는 서독중심적인 기본자세가 사회통합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사민당 출신 당수이자 독일 정계의 대부인 슈미트(Helmut Schmidt)는 "무엇보다 자유를 모르고 살아온 동독 주민을 자유로운 사회체제에 정서적으로 적응시키는 일이 아마도 가장 시일이 오래 걸리고 어려운 일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었다. 그러나 통일 후에 행해진 설문 결과, 문제는 새로운 사회체제에 적응을 못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고, 불이익을 당하면서도 동독인이기 때문에 불합리한 처사에 대항할 수 없는 처지가 정작 사회통합을 가로막는 문제였다. 적응의 문제라면, 오히려 동독인들은 지난 십 수 년 동안에 겪은 거대한 사회적, 경제적, 인격적 변화에 놀라울 정도로 유연하고 기동성 있게 대처하는 적응능력을 보여주었다. 동독사람들은 시장경제에 뛰어난 적응력을 보여주었다. 새 체제에 적응하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고 그들은 적극적이고 성과를 내려는 의지가 강하고 자주적이며 주체적인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그들의 성격은 현실감, 위험부담 감수, 긴장감의 인내, 민첩성, 유연성 등을 가지고 있어서 전혀 다른 경제, 행정, 문화 세계에 단기간 내에 적응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지난 20년간 약 1백만 명의 동독인들이 서독으로 이주했는데 그들 모두는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크게 낙오됨 없이 순탄하게 적응하여 살고 있는 것이 우리 눈앞에 보이는 증거가 될 것이다. 사회통합의 문제는 부적응의 문제가 아니라 부정의의 문제이다. 문제는 일방적 동화주의에 있다는 것이다. 올해 초에 통일과 사회통합을 위한 연구를 위해 독일을 방문했을 때 동독신학자와 서독신학자는 각각 사회통합을 위한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였다. 동독신학자 크뢰트케는 세 가지를 얘기했는데, 첫째, 위축되고 있는 현 교회 상황에서 ‘주목받고 있는 기독교인의 삶’을 사회에 소개하고, 둘째, 교역자가 아닌 일반 신도들을 선교의 주체로 세워 선교를 위한 부족한 인력을 보충하고, 셋째, 아직 선입견이 없는 젊은 세대에게 믿음과 사랑과 희망을 교회로서 얘기하겠다는 것이다. 서독신학자 몰트만은 사회통합 과정에서 발생한 약자들을 디아코니아적으로 보호, 지원하고, 비기독교적인 가치관으로 운영되는 통일사회에서 예언자적 선포를 계속하겠다는 두 가지 해법을 제시하였다. 본인은 발제를 시작하면서 언급하였거니와, 교회의 사명과 세상의 사명은 각자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과제를 소유하고 있다. 교회의 과제는 세상적이라는 말이다. 통일운동이 지향하는 사회통합은 하나님나라운동이 지향하는 화해된 일치와 같은 것이다. 네덜란드의 선교신학자 호켄다이크는 교회의 ‘하나님 나라 운동’은 봉사와 선포와 친교의 3중직으로 완성된다고 보았듯이, 동독교회와 서독교회는 예언자적 선포와 디아코니아적 봉사로 정치적 통일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다만 이 통일이 사회통합으로 완성되기까지에는 교회의 계속적인 예언자적 선포와 디아코니아적 봉사가 필요하다. 20년간 오히려 후퇴했다고 평가받는 사회통합의 문제가 코이노니아적 친교를 하나님나라 운동의 목표로서 바라보고 있는 교회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 독일의 상황을 보고 통일을 두렵게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가고 있지만, 그래서 통일을 기피하거나, 통일이 되면 경제특구를 만들어서 그들이 내려오지 못하도록 하자는 말들도 있지만, 통일운동은 우리 기독교인들이 당연히 꿈꾸어야 할 하나님나라의 실천운동이라는 점을 분명히 말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실천하는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독일과 한국의 교회는 봉사와 선포를 간단없이 계속해서 화해된 친교공동체를 만들어 가야할 사명이 있다. 정치적 통일 되면 다 이루게 되는 것이라고 잘 못 생각한 때가 있었다. 화해와 일치의 친교(Koinonia)가 우리가 바라는 통일의 궁극적 목표이다. 우리 한국교회가 ‘사회통합을 지향하는 통일운동’을 지속해 나갈 때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제 109회기 총회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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