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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역사공부

Peter Song 2023-07-31 (월) 16:44 8개월전 524  

'역사공부'

선교사로서 역사공부는 필수적이라 사료됩니다. 

그러나 사실에 입각한 해석/인식이라야 하겠지요. 

물론 자신의 선교지/사역지가 아닌 타 선교지 역사를 해석/인식하기엔 여러 한계가 있겠습니다. 

 

대한신보 박응환기자의 글은 나름 수고를 많이 하셨지만, 저희 우크라이나 선교사들이 보기에 침소봉대한 글이기에, 이를 바로 잡고자 제 글을 올려드립니다. 

 

우선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러시아 주민은 모두 동슬라브족의 같은 인종으로서, 키이우를 수도로 하는 ‘키이우루스(우크라이나의 옛 명칭, 러시아어로는 '키예프루스')가 강성하던 1세기말에, 키이우루스가 비잔틴제국에서 복음을 수용하여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988년까지도 벨라루스/민스크와 러시아/모스크바는 키이우루스에 속하는 존재감 없는 한낱 지방에 불과하였습니다. 

키이우공국에서 갈라져나온 수많은 제후국들 가운데 상대적으로 춥고 열악한 북동쪽에 위치한 제후국이었던 블라디미르-수즈달 공국, 그중에서도 가장 가치가 적었던 모스크바 지방에서 출발한, '모스크바공국'이 몽골-타타르의 멍에시기에 세력을 크게 키워, '루스-차르국'을 세우면서 오늘날의 러시아로 성장한 것입니다. 

 

몽골의 징기스칸의 바투군대가 서진을 하여, 1240년에 키이우를 함락, 키이우루스를 점령하여 1450년까지의 210년간 식민통치를 하였기에, 키이우루스/우크라이나는 기력을 소진하여 쇠락하였고, 반면에 몽골군대가 서진하는 와중에 키이우루스의 왕족과 귀족들은 대거 보따리를 싸서 북방에 위치하는 모스크바 및 민스크 지역으로 피란하여, 오늘날의 모스크바/러시아와 민스크/벨라루스의 토대를 이룬 것입니다. 

 

언어에 있어서, 세나라 모두 동슬라브어에서 파생된 언어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세 나라 언어가 거의 유사하다는 것은 한낱 오해입니다. 

예컨대, 러시아 사람과 우크라이나 사람이 서로 대화할 때, 러시아어로 대화하면, 상호 대화에 전혀 어려움이 없습니다. 소비에트시절 70년간 러시아어로 소통하였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이 두 사람이 우크라이나어로 대화한다면, 러시아 사람은 우크라이나 사람의 말을 대략 30%정도밖에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서로 대화가 되질 않지요. 벨라루스 사람의 경우는 미처 비교해 보질 않았습니다만 아마 비슷하리라 여겨집니다. 

 

1991년도에 구소련이 해체되면서 각기 독립한 각 연방마다 자기 고유언어를 공용어로 채택하였는데 이들 나라들에는 상관치 않고, 유독 우크라이나가 우크라이나어를 공용어로 채택한 것에만 러시아는 시비걸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것에 따른 이렇다할 불이익도 (그 모두가 지어낸 흑색 선전일뿐) 전혀 없었습니다. 

다소 부끄러울 고백이지만, 우크라이나 한인선교사들도 사역언어로 대부분 러시아어를 사용하여 왔습니다. 

 

우크라이나 역사 과정에서 ‘홀로도모르’(Holodomor)는 참으로 슬프고 비극적 사건입니다. 

그 시기는 1932년에서 1933년에 발생한 사건이지요. 당시는 소련의 서기장 스탈린의 통치 시기였습니다.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이데올로기 경쟁이 절정을 이루던 시기에, 농업 위주의 소련 공산경제로서는 승산이 없다고 느낀 스탈린 정권은 소련 체제를 공업경제체제로 바꾸려고, 소련의 농산물들을 대거 해외로 수출하였고 반면 그 수출대금으로 공업기계들을 수입하기에 여념이 없었는데, 1932-33년엔 전례 없던 대기근으로 농작물 수확이 크게 격감하였지만, 스탈린당국은 우크라이나 각 농가에의 징수 할당량을 오히려 늘려서 강압적으로 밀어붙였지요. 농민들이 거세게 저항하였지만, 공산 경찰과 군인들에 맞아 죽거나 기아로 죽은 숫자가 우크라이나에서만 700만~1000만이나 되었지요. 그 당시의 우크라이나 총인구는 2,800만이었다고 합니다. 

그 후유증으로 살던 집과 터전을 버려두고 떠나간 크름반도와 우크라이나 남부의 농촌지역의 농민/주민들이 부지기수였는데, 바로 그때 모스크바/러시아 일원에서는 homeless와 빈민들 대상으로 공지가 나붙기를, 

“지금 우크라이나/크림반도에는 주인없는 집과 토지가 수두룩한데, 누구든 먼저 가서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다!” 

러시아제국에는 함대가 다섯이 있습니다. 러시아의 함대들의 항구는 겨울철에 꽁꽁 얼어붙습니다.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토크항구까지도, 겨울철에는 항구 일부가 얼기에 쇄빙선이 부지런히 오가면서 뱃길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흑해함대의 항구, 세바스토폴 항만큼은 사시사철 얼지않는 부동항입니다. 따라서 러시아 푸틴은 세바스토폴항을 유달리 선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바스토폴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에 속해 있습니다. 과거 구소련 시절에는 그것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우크라이나가 1991년 독립한 이래, 그 세바스토폴의 흑해함대 지위가 불안정해져, 러시아는 임대형식으로 흑해함대를 유지하였습니다. 날이 갈수록 우크라이나가 서방으로 기울자, 흑해함대의 안정성이 염려스러운 러시아는 2014년 3월에 아예 크름반도를 강탈/병합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크림반도는 “원래 러시아 땅이었다”는 구실로, ‘원래’로 따지자면, “원래 모스크바자체가 우크라이나 땅”이었죠.. 그리고 1994년의 부다페스트 조약 협정문에 서명한 푸틴 역시, 우크라이나가 자국 보유의 핵미사일을 포기하는 대가로 크름반도를 포함한 우크라이나 영토를 여하한 상황에서도 1993년 당시의 국경 그대로 수호/보존해 주겠다는 국제협정문에 (당시 러시아 대통령으로서) 친필서명한 것이었죠. 

 

2021년 2월 14일에 감행된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관하여, 여러 비합리적 원인/이유들이 알려져 있습니다. 러시아 푸틴은 걸핏하면, 우크라이나를 향하여 '신나치'라고 공격합니다. 그리고 나치박멸을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의 명분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독일과 장기간 밀월관계에 있던 이는 우크라이나 젤렌스키가 아닌 러시아 푸틴 자신입니다. 독일의 전 수상 메르켈과 현 대통령 슈타인마이어는 모두가 아는 바 노골적인 친러인사로 푸틴과 노드스트럼 송유관 건설을 함께 추진하며 온갖 이권을 공유하여 왔지요. 스탈린과 히틀러를 자신의 추앙모델로 삼고있는 푸틴이야말로 '내로남불'의 전형입니다. 

제가 러시아에서 사역하던 7년간 러시아 서부의 Moscow와 St. Petersburg 현지 주민들로부터 "하이, 히틀러~"구호를 10여 차례이상 자주 들었었지만, 우크라이나에서 사역한 20여년간은 아직 한번도 들어보질 못하였습니다. 

 

현재의 우크라이나 전쟁은 2021년 2월 24일에 시작된 전쟁이 아닌, (우크라이나 현지인들은 모두 알고있듯이), 2014년 3월부터 계속 이어져온 전쟁입니다. 크름반도 전역의 면적은 27,064 km²로, 한국의 경상북도 보다 약간 큰 면적입니다. 고대에는 그리스인과 스키타이, 고트족 같은 민족이 거주하였고, 13세기에는 몽골 제국이 크른 반도를 정복했고 1475년부터 1774년까지는 오스만 제국의 종속국인 크름 칸국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1783년 4월 8일에 러시아 제국의 예카테리나 2세 황제가 크름 반도를 합병(러시아 제국의 크름 반도 합병)하면서 러시아 제국에 편입되었습니다. 

 

크름반도는 환경적 기후적 요인으로, 농번기인 3-10월에는 건조하고 더운 편으로 강수가 충분치 않기에, 거주민들의 생업(농업과 목축업) 종사에 많은 애로가 있어 왔습니다. 

1954년 소련의 서기장 '니키타 흐루쇼프'(Nikita Sergevevich Khrushchev)가 '운하건설' 계획을 고려하여, 소련 내부의 행정구역 조정으로 크림반도를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로 편입시켰고, 이후 1957년부터 우크라이나 드니프로 강의 물을 크름반도로 끌어들이는 계획인 ‘크름운하’ (Crimean Canal)의 건설이 시작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서기장 ‘니키타 흐루쇼프’가 우크라이나 출신이기에, 크름반도를 우크라이나에 선심 이양한 것이라고 흔히 오해하지만, 그는 러시아에서 출생한 러시아 농민의 아들이었고, 다만 가정형편상 10대시절 이후 우크라이나에서 오래 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소련의 서기장으로서 크름반도의 만성적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할 방안으로 크름반도를 우크라이나로 이양하면서 물 공급 책무를 맡긴 것입니다. 

크름운하는 우크라이나 헤르손주에서 크름반도로 흐르는, 물 공급을 위한 운하입니다. 

제가 사역하는 헤르손의 스타라마야치카(Staramayachka) 바로 곁에도 크름운하가 지나가지만, 헤르손지역의 우크라이나 농민들은 법적으로 그 운하의 물을 사용하거나 오염시킬 수 없습니다. 

 

소비에트연방이 크름반도를 우크라이나로 이양한 다음 해인 1957년 착공해 1961년부터 1971년까지 세 단계에 걸쳐 완공하였습니다. 이 운하는 헤르손 드니프로 강의 카호프카(Kahofka) 다목적댐에서 시작하여 크림반도 동쪽 끝까지 연결되어 흐르며 크름반도에서 필요로 하는 물의 95%를 공급하였습니다. 크름 운하의 총 길이는 402km에 달합니다. 

 

2014년 3월에 러시아에 의한 크름반도의 합병이 이뤄지고나서, 우크라이나 정부는 4월에 크름반도 운하로 공급되는 운하를 차단하였습니다. 

러시아는 세바스토폴을 모항기지로 하는 흑해함대의 안정성을 확보하려 크름반도를 2014년 3월에 합병하였으나, 세바스토폴 거주의 러시아 해군과 그 가족 이외의 또 다른 크름반도 200여 만 명의 거주민들은 날이 갈수록 크름당국과 러시아 정부에의 불평(complain)이 높아져 갔지요. 

크름반도 주민들 대다수의 생업은 농업, 목축업이기에 지속적인 식수와 용수의 공급이 필수적이었는데, 우크라이나에 의해 크름 운하가 차단된 이후로 크림 당국과 러시아 정부가 식수 및 용수를 공급하는 방안을 달리 제시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러시아 대통령 푸틴은 결국 한 사람의 정치인으로서, 크름반도 주민들의 물 공급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하였는데, 물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한 순리적/평화적 방식으론 두 가지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해수담수화 플랜트’입니다. 바닷물을 담수로 만들어 공급하는 방식으로, 이미 한국과 싱가폴을 비롯한 몇 나라가 이 해수담수화 플랜트 기술을 개발하여 시행하고 있습니다. 선진과학 기술을 가진 러시아도 자체적으로 해수담수화 플랜트 기술을 개발해 크름반도에서 사용하거나 아니면 이 기술을 가진 나라에 로열티를 지불하고 구입/시행해도 되었을 것입니다. 

또 하나는, 러시아가 지닌 오일을 우크라이나에 적정한 가격에 수출하면서, 우크라이나에게서는 종전과 동일한 방식으로 물을 공급받는 양자간 계약을 체결해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러시아/푸틴은 이 순리적/평화적 방식을 시도하지 않고, 종래 행하였던 방식인 우격다짐의 힘으로 강탈하는 골목대장식으로 침공하였다가 오히려 우크라이나의 역공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곤경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가장 먼저 점령한 지역은 헤르손주(State Kherson)였습니다. 

그리고 헤르손을 점령한 러시아군이 가장 먼저 취한 조치는 크름 운하를 차단하고 있던 댐을 폭파하여 운하의 물을 다시 흐르게 한 것이었기에, 이를 통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주된 목적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죠. 

 

우크라이나측은 군관민이 하나가 되고 남녀노소가 혼연일체가 되어, 미국과 유럽의 군사 지원에 힘입어 러시아군을 격퇴, 축출하고 있는 현황입니다. 실상 우크라이나 현 전력으론 돈바스는 물론 크름반도까지 수복할만한데, 미국과 유럽연합에서 이를 만류하고 있기에, 우크라이나측에서 다소 주저하고 있는 형국이죠.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는 말이 있듯이, 러시아도 궁지에 몰리면 그들의 보유 핵 무기를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러시아측에서는 전부터 핵무기 사용 빌미를 계속 찾고 있습니다. 유럽에서 가장 규모가 큰 자포리자 원전의 원자로 3기 두껑에 이미 폭약도 설치해 놓은 상태이고요. 만일 그렇게 되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에게, 어쩌면 온 인류에게 치명적 재앙이 될 것입니다. 

지난 1년 5개월여 러시아군의 사상자가 실로 어마무시합니다. 우크라이나 영토내로 들어온 러시아군인 25만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측의 사상자와 피해 역시 막대하지요. 

 

게다가 러시아군에 의해 헤르손의 '카호브카' 다목적댐이 파괴되었기에, 크름반도로 공급되던 식수와 용수가 전면 중단되었습니다. 전쟁후 이 댐을 다시 복구하는데 5년, 댐에 물을 담수하는 것에 3년, 도합 8년이 소요된다고 합니다. 

 

어느덧 1년여 이상을 끌어온 전쟁을 놓고 주변국 훈수자들은 “러시아 이겨라! 우크라이나 이겨라!” 하면서 응원전을 펼치지만, 저들 모두 금번 전쟁에서의 숱한 살육/살상의 한 가담자라 할 것입니다. 

길가다 싸움 난 것을 보면, 그 싸움을 구경하고 부추길 것이 아닌, 적극 뜯어 말려야 할 것이죠. 

전쟁 중단을 위한 중보/기도에 우리 모두 손을 모아야 할 때입니다. 

  

감사합니다~^ 

 

우크라이나 선교사, 송은용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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