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자원부  커뮤니티 공지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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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도 교육주제 전문

교육자원부 2005-12-03 (토) 18:24 18년전 1908  

하나님 나라와 경건 -딤전 4:7- 김치성 목사 (총회교육자원부 총무) 1. 문제제기 일백여년 이상의 기독교 역사 속에서 한국교회는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치면서 커다란 발전을 하게 되었다. 양적인 면으로 볼 때에 지금 1,200만 명이라는 숫자의 기독교인들이 있다. 이러한 숫자와 더불어 기독교가 이제는 사회의 지도적 자리에 우뚝 서게 되었다. 사회의 모든 구석구석에서 기독교의 자리가 점차 증대되게 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 자신을 뒤돌아보면 어떤 것은 자랑스럽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을 보면 부정적으로 여겨지는 것도 있다. 이를 좀 더 살피어 보면 사회에 비추인 우리의 모습은 대충 다음과 같다. 한국 기독교인은 신앙심을 위하여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지만 일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데에도 앞장을 서고 있고, 각종 국가적 차원의 비리와, 대형 참사 중심부에 기독교인들의 이름이 들어가 있으며, 교회는 커져 가는 데에도 사회봉사에는 인색하며, 교파가 너무 많아서 무엇이 무엇인지 모를 지경이라고 한다. 이 외에 다른 여러 이야기를 들어보면 교회행정의 비민주성 및 권위주의, 건강과 물질을 최고로 여기는 축복제일주의, 대형교회를 선호 및 교회의 도시집중현상, 교회분열, 지역사회의 필요에 대한 무관심 및 교회의 집단이기주의, 교회의 윤리적 타락, 은혜제일주의를 오용하여 부패를 묵인, 보수성과 안일에 빠져 변화를 외면, 사회와 역사에 대해 책임과 의무 회피, 개인주의적 신앙으로 인한 신앙의 사욕화, 젊은이들을 수용할 수 없는 교회의 모습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흔히들 기독교인들은 신앙심은 아주 훌륭하다고 한다. 그러나 개인의 윤리의식이라든지, 다른 사람과의 인간관계라든지, 교회 제도 내에서의 삶의 방식이라든지, 사회에 대한 의식을 보면 우리의 본질적 신앙과는 아주 거리가 멀게 느껴질 적이 있는 것이 바로 앞에서 언급되어진 여러 의견들이 외부 사람들에 비취어진 우리들의 모습인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의견들을 보면서 우리의 신앙 특히 우리의 경건을 생각하여 보아야 할 것이다. 신앙심이 아주 좋은 사람을 우리는 경건하다고 생각하여 왔다. 그런데 신앙심이 좋지만 윤리의식이 허약한 사람을 경건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신앙심은 굳건하지만 교회 내에서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소원한 사람을 경건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또 신앙은 돈독한데 세상에 대한 책임감이나 사회봉사에 대하여 둔감할 때에 경건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들은 우리로 하여금 21세기 포스트모던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경건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여 보게 한다. 2. 경 건 경건이라는 말을 다루기에 앞서서 경건과 유사하게 사용되어지는 어휘가 있다. 바로 영성이라는 말이다. 경건과 영성은 어떤 관련성이 있으며 얼마만큼 다를까? 우선 표면적으로 등장하는 차별성은 영성은 카톨릭 교회에서 나온 말이고 경건은 우리 장로교를 위시한 개혁교회에서 주로 사용되어짐에 있다. 즉 영성이라는 단어가 경건이라는 단어보다 역사적으로 오래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차별성 속에서 이 둘 사이의 간극을 좀 더 넓히어 보자. 17세기에 카톨릭 교회에서는 기독인의 윤리를 다루는 것으로서의 수덕신학과 기독교인이 하나님과의 신비로운 만남을 다루는 신비신학이 있었다. 그리고 이 둘은 하나의 신학으로 엮어져서 영성신학으로 발전되어졌으며, 바티칸II 이후에 영성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증가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수많은 연구업적과 결과물이 나오게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영성에 대한 개념의 흐름이 바뀌어지게 되었다. 예전에는 영성이 하나님과의 만남을 다루는 훈련의 학문이었다면 이제는 연구실에서 연구가 되어 질 수 있는 학문으로 점차 변하여 갔다. 이로 인하여 영성에 대한 정의도 아주 다양하여 지게 되었고, 그 적용범위가 대단히 광역화되어졌다. 그러기에 B.A. Gerrish 같은 이는 경건(piety) 보다는 영성(spirituality)이 그 단어의 사용 범위에 있어서 훨씬 넓다고 한다. 이러한 많은 영성에 대한 이해 속에서 본인은 영성의 정의를 사람됨(personhood)이라고 설명하고 싶다. 그 이유는 영성 연구의 역사를 살피어 보면 초창기에는 훈련으로서의 영성을 이야기하다가, 관계적인 영성, 공동체의 영성을 이야기하게 되는데 이의 핵심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인간과의 관계에서, 공동체와 사회 속에서 사람의 됨됨이를 영성이라고 보는 경향성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점차 그 사용범위가 확대되어지는 경향성 속에 있는 영성이라는 단어는 경건이라는 단어의 대안적 용어로 사용하여도 좋을 듯하다. 그러나 우리가 개혁교회의 전통을 이어받은 교회이며, 개혁교회의 시발자인 칼빈이 영성이라는 어휘보다 경건이라는 어휘를 선호하여 사용하였듯이 우리가 이번 주제의 글에서는 경건이라는 용어를 통하여 장로교의 전통을 좀 더 활성화시키고자 한다. 그렇다면 경건이란 과연 무엇일까? 우선 일반 사전에서 살피어 보면 경건이란 “공경하는 마음으로 삼가며 조심성이 있음”으로 표현되어져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 또는 부모님이나 가정에 대한 헌신과 경외심, 독실한 행동이나 말 등을 의미한다. 결국 일반적으로 사전에서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과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으로 이해되어질 수 있다. 이와 유사하게배경식은 경건에 대하여 설명하기를 “어떤 일을 해내야 된다는 의무감이나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 인간의 자질을 존경하는 마음, 그리고 신들로부터 오는 연민의 정”이라고 언급하면서도 궁극적으로 좁은 의미에서의 경건이란 “하나님께 대한 내적인 태도와 구체적인 삶”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와 아울러 성경적으로 신학적으로는 어떻게 사용되어지는지를 살피어 보자. 키텔 사전에 의하여 경건에 해당되어지는 신약의 단어는 다음과 같다. 첫째 “유세베이아(εὐσέβεια)” 와 “유세배스 (εὐσεβής)”라는 단어이다. 이는 하나님을 목표로 삼고 살아가며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포함하는 삶을 나타낸다. 둘째로, “율라배스 (εὐλαβής)”가 있다. 이는 신약에서 희귀하게 나타나는 단어인데 항상 “독실한” 또는 “경건한”이라는 의미로 쓰여졌다 (눅2:25, 행2:5, 행8:2, 행22:12). 셋째로, “데오세배스 (θεοσεβής)”가 있다. 이는 데오스와 유세배스의 합성어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의 뜻을 가진 형용사이며(요9:31), “데오세베이아 (θεοσεβεία)는 “경건, 하나님 공경”이라는 명사이다(딤전2:10). 그러므로 실제로는 유세배스의 범주 속에 들어갈 수 있는 단어이다. 마지막으로 ”셈노스 (σεμνός)“가 있다. “고상한”의 뜻을 가진 단어이다. 신약성경에서는 귀중하고 고귀하고 존경할 만한 가치있는 것을 신중히 고려하여 실행하라는 의미로 쓰여졌고 (빌4:8), 엄숙하고 가치있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였다(딤전3:8,11, 딛2:2). 이중에서 경건이라는 말의 대표적인 단어는 분명 εὐσέβεια이다. 이는 인간에 대한 올바른 태도로서의 효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주로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의미한다. 신약에서 유세베이아라는 말은 거의 다 “경건”이라는 말로 번역되었다 예외적으로 행3:12에서 거룩이라는 말로 번역되기도 하였다. 이 말이 하나님과 연관되어 나타나는 단어가 θεοσεβεία 인데 “경건, 하나님 공경”이라는 명사이고 딤전2:10에서 딱 한번 나타난다. 이러한 것을 보아 경건이라는 언어에 대한 기본적인 의미는 도덕이나 신앙적인 고백 그 이상의 것을 의미하며 하나님과의 결합에서 오는 능력 또는 실재라는 뜻이 있다. 이렇듯 일반 사전과 성서 어휘적 의미에서는 경건이란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어떤 대상자에 대한 경외심, 존경심, 공경심, 신뢰심, 두려움 등으로 이해되어진다. 즉 마음의 문제이다. 마음 속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신뢰감과 존경심이 참 경건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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